주절주절 : 잡소리

할머니 그 동안 고생 많았어요.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.

박씨 아저씨 2024. 9. 22. 11:09

얼마 전 42살이 되었다. 일본에 살다 보니 만 나이가 편하긴 하다. 그런데 이젠 내 나이가 몇 인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.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. 아무튼 내가 나이를 먹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, 특히 부모세대들이 나이 들고 병들고 돌아가시는 일들이 역시 부쩍 늘었다.

나는 부모가 없다. 문자 그대로 낳아준 부모들은 이미 옛날 옛적에 다들 돌아가셨다. 친어머니는 내 나이 2살 혹은 3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. 아버지라는 사람은 존재는 했지만 아버지로서의 책무를 단한번도 이행해 본 적이 없는 인간이었다. 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줄곧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. 아버지와 같이 살았던 건 초등학교 2학년~4학년 사이의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전부였다. 

많은 시간을 술에 의존하며, 배운 것 없고, 가진 것 없는 본인의 신세를 한탄하며 자기 자식들을 몽둥이 찜질하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살았던 사람이 바로 나의 아버지다. 정말 수도 없이 많이 맞았다. 그 시절 못살던 사람들은 대 부분 그랬을지도 모르지만, 그렇다고 그러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기에 난 내 아버지를 증오하고, 저주한다. 내 인생의 최고의 반면교사가 우리 아버지다. 

결혼을 하면서도, 아이를 낳으면서도 내가 아버지 처럼 아내와 아이를 때리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? 하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고, 그래서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고 또 주저했던 것 같다. 결과적으로 아직까지는 아버지 같은 인간이 되진 않았지만, 죽기 직전까지 난 아마도 안심하지 못할 것 같다. 계속해서 경계해야 할 일이다. 

아무튼 알콜중독에 인생의 패배자였던 아버지는 내가 만 26살이던 해에 죽었다. 난 장례식장에도 가지 않았다. 이미 오랜 시간 전에 부모와 자식의 연은 끊어졌었고 난 나의 부모는 할머니라고 생각하고 살았다.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아버지 장례식장에 가지 못한 일,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일이 후회되거나, 죄스럽거나 미안하다고, 자식으로서의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. 

장황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얼마 전 나를 키워준 부모, 할머니가 타계를 하셨기 때문이다.  내가 지금의 우리 딸내미 나이 때 부터 나를 키워주셨던 할머니. 다 늙어서 대체 무슨 고생이셨을까. 할머니는 온갖 일을 하면서 나를 키워주셨다. 할머니가 없었으면 이미 어딘가 고아원에 들어갔거나 이 나이까지 살지 못하고 어딘가에서 죽었을 것이다. 할머니 덕분에 사람처럼 살고 있고, 가족을 이루고,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. 

그래서 할머니를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다 했다. 어릴 때 부터 마지막 가시는 그때까지도. 그게 자식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고, 나를 키우면서 고생한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. 자식을 키워보니 할머니의 고마움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. 장례식도 다 마치고, 유품정리까지 다 마쳤는데,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. 한국에 태풍이 오거나, 맛있는 걸 먹거나 하면 여전히 아, 할머니네 별일 없나? 아, 할머니한테도 보내드려야겠다 하는 식으로 여전히 할머니를 떠올리곤, 곧 바로 아...하곤 한다. 당분간은 이럴 것 같다...

 

할머니 정말 고생 많았어요.
하늘나라에서 부디 푹 쉬시고, 그 동안 못했던 것들 다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아요.
감사합니다. 할머니 사랑해요!